2006년 11월 29일에 썼던 글을 다시 퍼온다. 내가 노무현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놓아버린 날로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는 그때 내가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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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어느 날
2006-11-29 21:07
2002년 12월, 강원도 양구에 있었다. 훈련소 동기들 멀리멀리 떠나보내고 혼자 3주를 논산에서 더 보내고(저주의
81미리-_-) 나서야 춘천행 기차를 타고 이곳까지 온지도 3달째였다. 군번이 지지리도 꼬이다 보니 다음달에 일병인데 밑으로
한명, 그것도 주차로 끊는 부대였기에 3주 후임 하나가 고작인 상황이었다. 10월의 첫 훈련 때 산 속에서 영하 15까지 떨어지는
수은주를 본 이후로 단 한번도 3한 4온을 느끼지 못하는 생활이 계속되는 12월의 어느날이었다. 취사장에 올라가 도장을 찍고
다시 봉투에 밀봉하여 행정반에 제출하던 그 날도 유난히 추웠다.
첫 대통령 선거를 부재자 투표를 통해 경험한 그 날
저녁, 유별나게도 대구, 부산쪽 출신들이 많은 내무반의 점호 시간에 소대 왕고가 일어나 누구에게 투표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20명중 17명이 딴나라당의 그 인간에게 투표했다고 손을 든다. 인근 부대에서 현역으로 복무한 야당 후보에게 투표한 것은 나를
포함해 3명이었다. 소대 왕고였던 그 고참도 포함되었다. 거주지가 대구이긴 했지만 성골(?)은 아닌 타지역 이주자였기 때문일까?
어쨌든 묘하게 느껴지는 곱지 않은 시선을 느끼며 잠이 들었고 그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 날 아침, TV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식은 전날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뛸듯이 기뻤지만 새파란 막내 이등병 놈이 그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는 조직이 아니던가? 어쨌거나 그일이 있고난 이후로 특정지역의 선임들 덕(?)에 순탄치많은 안은 군생활이 시작된
것은 따로 언급하지 않아도 DVD일테고, 그 무리중 일부는 내게 '운동권'이라는 학교다니면서 단 한번도 가담해보지 않은 집단의
꼬리표를 붙여주기까지 했었다.(이는 물론 정신교육 주간에 있었던 미국에 대한 중립적인 발언 때문이기도 했다.)
찬 바람이 부는 오늘 같은 날씨에는 가끔가다 양구에서 생활하던 날들의 기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문득 오늘따라 대선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 것은 한 장의 사진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 사진.
물
론 이제와서 나의 선택을 후회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화가 난다. 나는 이런 꼴을 보고자 그에게 소중한 한 표를 던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사진은 해외 토픽감이 아니던가? 버스로 집회장소를 차단하는 모습은 그 어떤 나라에서도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법을
공부한 사람이랬다. 인근 부대에서 근무한 현역병 출신이랬다. 나름 다른 이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란 기대를 걸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사진에서 보이는 이 웃지 못할 모습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여기서 말하는 모든 국민은 모 의원이 말한 그 법앞에서 평등하다는 1만 명 뿐이란 말일까? 4년 전 어느 날이 생각 날 만큼 제법
쌀쌀한 날이다. 민간인이 된지도 벌써 2년이 지났건만 어째서 그 때 느껴지던 추위가 다시 한 번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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