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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에 해당되는 글 1

  1. 2015.11.12 수저 계급론에 대한 희한한 프레임짜기
2015. 11. 12. 01:39 사회

 오늘 모 방송 페이스북 계정에서 비틀어 만든 재미난(?) 컨텐츠를 보았다. 우리 엄마가 왜 흙이냐며 징징대는 댓글을 갖고 만든 그림이었는데, 고생하신 부모님 얘기는 그렇다 쳐도 뭔가 상당히 촛점을 잘못 잡고 만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의 2030세대가 수저와 계급얘기를 하는 것이 부모 욕을 하는 것이던가? 나는 이 컨텐츠를 보는 순간 날아라 슈퍼보드의 사오정이 떠올랐다. 무슨 말만하면 '왜 울엄마 욕해~'라고 말하는 그 사오정 말이다.

 우선 핀트를 정확하게 짚어내야겠다. 수저/계급론이란 결국 없는 집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공정한 경쟁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는데서 오는 박탈감을 표현한 것이다. 이른바 부에 의해 정의되는 신분제 사회에 대한 풍자인 셈이다.  열심히 대학 등록금을 벌어가며 바쁘게 4년을 보내고 나서 남는 것은 졸업장 한 장이지만, 등록금에 대한 부담이 없이 방학때마다 여행다니고 부모님 덕에 어학연수다 뭐다 해서 해외경험을 쌓으며 학기중에는 오로지 학업에만 열중할 수 있는 학생이 입사지원시 쓸 것도 많고 소위말하느 스펙에서 앞서게 된다. 그 뿐인가? 공공연한 비밀이라 할 수 있는 백도어 입사자들은 공정경쟁과는 전혀 거리가 먼 방법을 통해 세상을 살아간다. 더 많이 일하고, 더 열심히 살아도 극복하기 어려운 보이지 않는 벽의 존재 앞에서 느끼게 되는 상실감이 무엇인지는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입시 얘기까지 하자면 너무 길어질 것 같지만 아직 한국 사회의 대학 입시는 돈으로 처바른 아이들이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쉬운 구조이기도 하다. 누구는 아무리 노력해도 얻기 힘든 레어템을 이미 어떤 아이들은 부모님께 하사받아 착용하고 싸운다. 이러니 공정한 경쟁이 될리도 없고, 그 아이템들을 치워놓고 보면 차이가 없거나 더 못해보이는 사람들이 아이템빨, 부모빨로 쉽게 승리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나오게 된 자조적인 표현을 두고 왜 우리엄마가 흙이냐고 따지며 흐느끼는건 도대체 어느 학교 국어선생이 교육을 이따위로 시켜서 나오게 된 표현인지가 궁금할 뿐이다.

 어쩌면 이것은 대나무숲이라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아이디를 악용한, 기존 기득권 세대의 수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쉽게 안티를 만들 수 있는 코드 중 하나가 바로 패륜이니까. 흙수저 타령하는 것들은 부모님 은혜도 부정하는 패륜적인 놈들이다로 몰아가기 위한 아주 얕은 수법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수준의 말장난은 고등학교 정규교육 과정만 마쳐도 넘어가지 않는 정말 치졸한 수준의 망발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과연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고 있으며, 공정한 평가를 통해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과연 그렇다고 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의 요직들은 일가의 혈족들이 차지하고 있고, 사립학교의 좋은 자리는 재단 혈족들이 대놓고 뒷문을 열고 들어가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자조에 섞인 풍자가 고작해야 부모님 탓하는 철부지들의 아우성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는 말인가? 여전히 이기적이고, 때를 잘 만나 쉽게 살아온 덕에 요즘 젊은 것들 탓만 하는 꼰대들에겐 그렇게 들리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상종 못할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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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gdanov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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